자율과 타율: 스스로 세운 기준으로 움직이는 힘
성공의 과정에는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누구나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주변의 평가, 눈앞의 보상, 갑작스러운 기회, 불안한 상황은 우리의 판단과 행동을 흔들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움직임이 같은 깊이를 갖는 것은 아니다. 어떤 행동은 스스로 세운 기준에서 나오고, 어떤 행동은 바깥의 자극에 밀려 나온다. 자율과 타율의 차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자율(自律)은 자신의 기준을 스스로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자신을 움직이는 힘에 가깝다. 누군가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와 방향에 따라 행동하는 태도다. 반면 타율(他律)은 외부의 기준에 의해 움직이는 상태다. 타인의 시선, 분위기, 유행, 보상과 처벌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고, 자신이 왜 움직이는지보다 바깥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가 더 큰 기준이 된다.
말의 의미 안에도 이 차이는 담겨 있다. 자율(自律)의 자(自)는 스스로를 뜻하고, 율(律)은 법과 규칙을 뜻한다. 자율은 자기 안에 세운 규칙을 따라 살아가는 태도다. 타율(他律)의 타(他)는 나 아닌 다른 것을 뜻하고, 율(律)은 마찬가지로 규칙을 뜻한다. 타율은 자신의 안에서 나온 기준이 아니라, 바깥에서 주어진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하나는 안에서 방향을 세우고, 다른 하나는 밖에서 방향을 받는다.
철학적으로 자율은 칸트가 말한 실천이성의 자율과 닿아 있다. 칸트에게 자율은 아무렇게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유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안의 이성과 도덕적 기준에 따라 스스로를 다스리는 힘이었다. 외부의 보상이나 처벌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기준에 따라 행동할 때 인간은 더 깊은 자유에 가까워진다. 자율은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바른 기준에 자신을 맡기는 일이다.
타율은 바깥의 힘에 반응하는 삶과 연결된다. 무엇이 유리한지,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 지금 무엇이 더 많은 보상을 주는지에 따라 움직이면 선택은 쉽게 흔들린다. 니체가 말한 자기 명령의 문제도 이 지점에서 떠올릴 수 있다. 자신에게 명령할 수 없는 사람은 결국 다른 가치와 다른 기준에 끌려가기 쉽다. 타율은 반드시 약한 마음만을 뜻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기준이 충분히 서 있지 않을 때, 사람은 외부의 흐름에 더 쉽게 방향을 내어 주게 된다.
성공의 과정에서 자율은 매우 중요한 힘이 된다. 어떤 일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복이 필요하고, 반복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움직이는 기준이 필요하다. 처음의 열정이 줄어들고, 주변의 반응이 기대만큼 빠르지 않고, 당장의 보상이 보이지 않을 때도 해야 할 일을 이어 가게 하는 힘은 자율에서 나온다. 자율은 행동을 외부의 박수에만 맡기지 않게 한다.
타율에 기대는 행동은 처음에는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칭찬을 받으면 힘이 나고, 보상이 있으면 움직이고, 누군가가 지켜보면 더 열심히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힘만으로는 오래가기 어렵다. 외부의 자극이 사라지면 행동도 함께 약해지기 때문이다. 성공은 한순간의 반응보다, 스스로 세운 기준을 따라 반복된 선택이 쌓이는 과정에 더 가깝다.
일의 세계에서도 자율과 타율의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율적인 사람은 누가 보지 않아도 자신이 맡은 일을 일정한 기준으로 다룬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부분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자신이 세운 약속과 품질을 지키려 한다. 타율에 가까운 사람은 평가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태도가 달라지기 쉽다. 외부의 감시와 보상이 사라지면 기준도 함께 느슨해진다.
자율은 일관성을 만든다. 일관성은 신뢰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한 번의 좋은 결과보다 반복해서 지켜지는 태도를 더 오래 믿는다. 자율이 있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방법을 바꿀 수는 있지만,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중심은 쉽게 놓지 않는다. 그래서 자율은 단순한 자기 통제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신뢰의 바탕이 된다.
타율은 선택을 바깥에 맡기게 만든다. 환경이 좋으면 움직이고, 환경이 나쁘면 멈추고, 인정받으면 계속하고, 인정받지 못하면 쉽게 흔들린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외부의 영향을 받는다. 문제는 그 영향이 전부가 될 때 생긴다. 바깥의 조건이 나의 행동을 모두 결정하게 두면, 마음속 가능성은 현실의 형태를 얻기 어렵다. 가능성은 외부의 자극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선택한 행동을 통해 조금씩 자리를 얻는다.
자율은 자신을 몰아붙이는 일이 아니다. 자율은 스스로를 더 혹독하게 통제하는 태도와 다르다. 오히려 자신의 방향을 알고, 필요한 규칙을 세우며, 그 규칙이 삶을 더 안정적으로 움직이게 하도록 돕는 힘이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과도한 규칙은 오래가지 못한다. 건강한 자율은 자신을 지치게 하는 명령이 아니라, 자신을 꾸준히 움직이게 하는 기준에 가깝다.
성공은 마음속 가능성이 현실의 형태를 얻어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자율은 가능성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내면의 장치가 된다.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 기억하고,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다시 확인하며,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실행으로 돌아오게 한다. 타율은 외부 자극이 있을 때만 움직이게 하지만, 자율은 자극이 약한 날에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한다.
우리는 때때로 자유를 아무 규칙도 없는 상태로 생각한다. 그러나 규칙이 전혀 없으면 마음은 오히려 더 쉽게 흔들린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어디까지 해야 할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 매번 새롭게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세운 좋은 규칙은 자유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흔들림을 줄여 준다. 자율은 나를 가두는 울타리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가게 하는 길일 수 있다.
성공의 자기암시 역시 자율의 방향을 따라야 한다. “나는 나의 기준을 스스로 세우고, 오늘의 행동으로 지켜 간다.” “나는 외부의 자극에만 흔들리지 않고,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나의 작은 규칙은 현실에 신뢰와 결과로 쌓이고 있다.” 이런 말은은 자신을 억누르기 위한 말이 아니다. 흩어지는 마음을 다시 중심으로 모으고, 오늘의 실행을 스스로 선택한 기준 위에 세우게 하는 자기암시다.
자율은 우리를 스스로 움직이게 하고, 타율은 우리를 바깥의 흐름에 반응하게 한다. 자율은 선택을 기준으로 바꾸고, 기준은 반복을 만들며, 반복은 현실의 결과로 남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시켜서 움직이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이다. 성공은 외부의 자극을 기다리는 사람보다, 스스로 세운 규칙을 따라 조용히 실행을 쌓아 가는 사람에게 조금씩 가까워진다. © 꾸에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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