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과 요행: 현실을 보고도 가능성을 선택하는 힘
성공의 과정에는 긍정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아직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찾아올 때도 있으며, 주변의 분위기가 차갑게 느껴지는 시기도 있다. 그때 마음이 완전히 꺾이면 실행은 이어지기 어렵다. 그러나 긍정적인 마음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긍정은 현실을 더 분명히 보게 하고, 어떤 긍정은 현실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낙관(樂觀)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가능성을 바라보는 태도에 가깝다. 지금의 어려움과 위험을 알고, 필요한 준비를 하며, 그럼에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이다. 반면 요행(僥幸)은 충분한 준비나 검토 없이 우연히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낙관이 현실을 보고 움직이는 믿음이라면, 요행은 현실을 보지 않으려는 기대일 수 있다.
말의 의미 안에도 이 차이는 담겨 있다. 낙관(樂觀)의 낙(樂)은 즐거움과 기쁨을 뜻하고, 관(觀)은 바라본다는 뜻을 품고 있다. 낙관은 무조건 즐겁게 생각하는 태도가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 안에서 가능성과 의미를 잃지 않는 마음이다. 요행(僥幸)의 요(僥)는 바란다는 뜻을 지니고, 행(幸)은 다행과 뜻밖의 행운을 뜻한다. 요행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하지 않은 채, 다만 운이 좋기를 바라는 마음에 가까워질 수 있다.
철학적으로 낙관은 삶의 어려움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와 닿아 있다.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고통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어려움까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다시 자신의 힘을 만들어 가는 태도에 가깝다. 낙관은 현실을 덮어 두는 밝은 말이 아니라, 현실을 마주한 뒤에도 삶과 실행의 방향을 포기하지 않는 힘이다.
요행은 그와 다르게 현실 앞에서 책임을 미루는 마음일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심미적 단계의 삶처럼, 순간의 기대와 감정에 기대어 깊은 선택을 피할 때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 응답을 뒤로 미루게 된다. 요행은 불안을 잠시 덮어 줄 수는 있지만, 실행의 기준을 세워 주지는 못한다. 운이 따르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는 변화하는 현실에 대응하기 어렵다.
성공의 과정에서 낙관은 중요한 자원이 된다. 낙관적인 사람은 어려움을 보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어려움을 보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는 사람이다. 위험을 살피고, 필요한 준비를 하고, 가능성을 검토하며, 실패할 수 있는 부분을 줄여 간다. 그래서 낙관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준비된 믿음에 가깝다.
요행은 겉으로는 긍정처럼 보일 때가 있다. “잘될 것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이번에는 운이 따라줄 것이다”라는 말은 마음을 가볍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 말 뒤에 준비와 실행이 없다면, 그것은 낙관보다 요행에 가까워진다. 긍정은 현실을 지우기 위한 말이 아니라, 현실을 통과하기 위한 마음의 방향이어야 한다.
어떤 일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능성을 믿는 마음과 동시에 위험을 살피는 태도가 필요하다. 낙관은 이 둘을 함께 품는다. 원하는 결과만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어긋날 가능성도 생각한다. 필요한 자원은 무엇인지, 부족한 준비는 무엇인지, 예상되는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지 차분히 바라본다. 그렇게 준비된 낙관은 실행을 더 안정적으로 만든다.
요행에 기대는 마음은 준비를 늦추게 한다. 아직 해 보지 않은 일을 성공할 것이라고만 믿고, 검증해야 할 것을 미루고, 불편한 신호를 무시하게 만든다. 운이 좋으면 잠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복해서 결과를 만들어 가야 하는 과정에서는 요행만으로 버티기 어렵다. 성공은 우연한 한 번의 행운보다, 준비된 선택이 반복되며 현실에 남기는 흔적에 더 가깝다.
일의 세계에서도 낙관과 요행은 다르게 드러난다. 낙관적인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질문을 던진다. 지금 확인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실패할 경우 어떤 대안을 준비할 수 있는가. 지금의 문제를 다음 실행의 자료로 만들 수 있는가. 반대로 요행에 기대는 사람은 질문보다 기대에 머문다. 아직 확인하지 않았지만 잘될 것이라 믿고, 아직 준비하지 않았지만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란다.
낙관은 마음을 단단하게 하지만, 요행은 마음을 쉽게 흔들리게 한다. 낙관은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상 밖의 일이 생겨도 다시 대응할 수 있다. 반면 요행은 현실을 충분히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변수에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낙관은 위기 속에서 다음 행동을 찾게 하고, 요행은 위기 앞에서 당황하게 만든다.
성공은 마음속 가능성이 현실의 형태를 얻어 가는 과정이다. 가능성을 믿지 않으면 시작하기 어렵고, 현실을 보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낙관은 가능성과 현실을 함께 바라보게 한다. 할 수 있다는 마음을 품되,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놓치지 않게 한다. 그래서 낙관은 실행의 힘이 되고, 요행은 실행을 대신하려는 기대가 된다.
우리는 때때로 낙관을 너무 가볍게 이해한다. 좋은 말만 하고, 밝은 면만 보고,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이 낙관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깊은 낙관은 불안을 모르는 마음이 아니다. 불안을 알면서도 그 불안에 모든 선택을 맡기지 않는 마음이다. 어려움을 보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준비하는 태도다.
성공의 자기암시 역시 낙관의 방향을 따라야 한다. “나는 현실을 차분히 바라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한다.” “나는 어려움 속에서도 가능성을 잃지 않고 다음 실행을 선택한다.” “나의 낙관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준비된 행동으로 쌓이고 있다.” 이런 말은 자신을 억지로 밝게 만들기 위한 말이 아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가능성을 향해 마음과 행동을 정렬하게 하는 자기암시다.
낙관은 우리를 다시 움직이게 하고, 요행은 때로 우리가 해야 할 준비를 미루게 한다. 낙관은 현실을 보고도 가능성을 선택하는 힘이고, 요행은 현실을 보지 않은 채 결과만 기대하는 마음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잘될 것이라고 말하는가보다, 잘되기 위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실행하고 있는가인지도 모른다. 성공은 우연한 행운을 기다리는 사람보다, 현실을 직시한 뒤에도 가능성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조금씩 가까워진다. © 꾸에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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