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과 거부: 풍요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그릇
삶은 늘 변화 속에서 움직인다. 어떤 변화는 기대한 모습으로 찾아오고, 어떤 변화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그때마다 두 가지 태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다음 길을 찾아가는 수용(受容)과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을 밀어내며 버티려는 거부(拒否)이다. 같은 현실을 경험하더라도 어떤 태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흐름은 조금씩 달라진다.
수용은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렇다고 체념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거부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 맞서려는 상태에 가깝다. 바뀐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이미 지나간 것에 머물러 있을 때 사람은 새로운 흐름을 보기 어려워진다.
사람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변화는 언제나 편안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기대를 내려놓아야 하고, 때로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삶의 풍요는 완벽함에서 시작되기보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의 문이 닫혀 있으면 새로운 기회도 들어오기 어렵지만, 열린 마음은 예상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발견하게 만든다.
철학적으로 수용은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아모르 파티(Amor Fati)와 닿아 있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지만, 보다 깊게 들여다보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찾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삶은 언제나 우리의 기대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을 부정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려 할 때 사람은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비즈니스 업무와 투자, 그리고 일상 속에서도 수용의 힘은 중요하다.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은 더 빨리 배우고 성장한다. 예상과 다른 결과를 만났을 때도 무엇을 놓쳤는지 돌아보며 방향을 조정한다. 반대로 과거의 방식과 생각에만 머물러 있으면 변화하는 흐름을 읽기 어려워진다. 풍요는 단순히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함 속에서도 자라난다.
말의 의미 안에도 이 차이는 담겨 있다. 수용(受容)의 수(受)는 받아들인다는 뜻을, 용(容)은 담는다는 뜻을 품고 있다. 무언가를 자신의 그릇 안에 받아들이는 모습이 그 안에 담겨 있다. 거부(拒否)의 거(拒)는 막는다는 뜻을, 부(否)는 아니라고 말한다는 뜻을 지닌다. 들어오려는 것을 밀어내고 거리를 두려는 태도가 그 의미 안에 스며 있다. 결국 수용은 마음의 그릇을 넓히는 방향에 가깝고, 거부는 그릇의 문을 닫아두는 방향에 가깝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현실 그 자체보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다. 삶에는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이 함께 존재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향해 움직이는 용기가 함께할 때 삶은 조금 더 균형을 찾는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수용은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니라 현실 위에 새로운 가능성을 세우는 태도다.
행복과 풍요도 같은 흐름 안에 있다. 부족함만 바라볼 때 마음은 쉽게 메말라간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미 가진 것의 가치를 느끼며 앞으로 열릴 가능성을 믿기 시작할 때 마음은 조금씩 충만해진다. 풍요는 삶을 억지로 통제할 때보다 삶의 흐름과 함께 움직일 때 더 자연스럽게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변화 앞에 서게 된다. 어떤 변화는 반갑고 어떤 변화는 불편하다. 중요한 것은 변화 자체보다 그 변화를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는가이다. 수용은 삶의 흐름을 신뢰하게 만들고, 거부는 끊임없이 싸워야 할 대상을 만들어낸다. 삶의 풍요는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얻는 데서보다,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마음을 여는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 꾸에 일기장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