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vs 만용: 리스크를 감수하는 결단과 파멸을 부르는 무모함


부의 성취는 안전 지대를 벗어나는 결단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안전 지대를 벗어나려면 용기와 만용이라는 두 가지 행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용기가 두려움을 인지하면서도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 리스크를 짊어지는 절제된 기백이라면, 만용은 위험을 간과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무모하게 뛰어드는 객기다. 비즈니스에서 용기는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혁신을 낳지만, 만용은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초래한다.

철학적 관점에서 용기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Mesotes)’의 덕목이다. 중용은 비겁함과 무모함 사이의 최적의 지점이며, 이성이 통제하는 실천적 지혜다. 반면 만용은 이성의 통제가 결여된 채 감정과 혈기만이 앞선 상태로, 고대 철학에서는 이를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독소로 보았다. 이처럼 용기는 우리를 강인하게 만들고, 만용은 우리를 위태롭게 한다.

경제적 현장에서 행복한 부자는 ‘계산된 리스크’를 즐긴다. 그는 실패했을 때의 손실 규모를 미리 파악하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진다. 반면 만용에 빠진 사람은 리스크의 실체를 보지 않는다. "남들도 다 하니까", 혹은 "이번에 안 되면 끝장"이라는 식의 벼랑 끝 전술로 전 재산을 배팅한다. 행복한 부자는 용기로 기회를 쟁취하고, 만용의 독단이 고개를 들 때마다 냉정한 데이터로 자신을 억제한다. 용기는 ‘의지’의 문제이고, 만용은 ‘무지’의 문제다.

언어적 의미를 살펴보면 ‘용기(勇氣)’의 용(勇)은 날랠 용 자로, 샘솟는 기운과 힘을 뜻한다. 즉, 내면에서 정제된 힘이 밖으로 표출되는 상태다. ‘만용(蠻勇)’의 만(蠻)은 오랑캐나 야만스러움을 뜻한다. 즉, 이치나 예법을 모르고 힘과 혈기만으로 밀어붙이는 거친 태도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준비 없는 무모함이다. 용기는 지식과 경험이 쌓일 때 깊어지지만, 만용은 무지와 자만이 만날 때 폭주한다. 행복한 부자는 도망쳐야 할 때와 싸워야 할 때를 명확히 구분하며, 한 번 결단하면 인내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용의주도한 승부사’다. 그는 "나는 위험을 관리할 수 있으며, 내가 감수하는 리스크만큼 부의 크기도 커질 것이다"라는 자기암시를 되뇐다.

행복한 부자란 용기의 힘으로 대중과 반대로 걷고 그 결과로 큰 결실을 본 사람이다. 오늘 나의 행동을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 리스크를 가슴에 품은 용기인가, 아니면 눈을 가린 채 달리는 만용인가. © 꾸에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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