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와 결핍: 마음이 머무는 삶의 방향


풍요는 바깥의 크기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어떤 사람은 넉넉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늘 부족함을 먼저 바라본다. 삶의 조건이 전부 같을 수는 없지만 마음이 어디에 머무는가에 따라 삶의 감각은 달라진다. 풍요와 결핍은 단순히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의 방향에 가깝다.

풍요(豊饒)는 이미 있는 것을 느끼고 앞으로 자라날 가능성을 신뢰하는 마음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만 비로소 안심하는 상태가 아니라 지금 가진 것 안에서도 의미와 여유를 발견하는 감각이다. 반면 결핍(缺乏)은 부족함에 마음이 묶인 상태다. 아직 없는 것, 잃을지도 모르는 것, 남보다 적다고 느껴지는 것에 시선이 오래 머물 때 마음은 쉽게 좁아진다. 결핍은 현실의 부족만이 아니라 마음이 부족함만 바라보는 습관이 되기도 한다.

풍요로운 마음은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본다. 내게 있는 것이 전부 빼앗길까 두려워하기보다 삶 안에는 나눌 수 있는 것과 다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풍요는 여유와 연결된다. 여유가 있는 마음은 쉽게 움켜쥐지 않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좋은 일 앞에서도 자신의 삶이 줄어든다고 느끼지 않는다.

결핍의 마음은 반대로 삶을 좁게 만든다. 무엇을 보아도 부족한 쪽이 먼저 보이고 타인의 성취가 자신의 손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많이 가지고 있어도 마음이 계속 불안하다면 그 불안은 소유의 양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결핍은 더 가져야 사라지는 감각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가진 것을 느끼지 못할 때 깊어지는 마음의 습관일지도 모른다.

철학적으로 풍요는 스피노자가 말한 능동적 기쁨과 닿아 있다. 능동적 기쁨은 바깥의 조건에 휘둘리기보다 자신의 존재의 힘이 넓어지는 상태에 가깝다. 마음이 넓어지고, 삶을 받아들이는 힘이 커지고, 자신이 가진 것을 더 좋은 방향으로 쓰고 싶어지는 감각이다. 풍요는 단순히 넘쳐나는 소유가 아니라 삶을 더 넓게 느끼는 내면의 힘이라 할 수 있다.

결핍은 부족함에 마음이 고정되는 상태와 연결된다. 사르트르가 말한 결핍의 감각처럼 사람은 때때로 자신에게 없는 것에서 출발해 자신을 바라본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 아직 갖지 못한 것, 아직 인정받지 못한 것들이 자신을 규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삶은 없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미 있는 것, 지금 자라고 있는 것, 아직 작지만 마음 안에서 따뜻하게 빛나는 것들도 함께 삶을 이루고 있다.

말의 의미 안에도 두 단어의 차이는 담겨 있다. 풍요(豊饒)의 풍(豊)은 그릇에 가득 찬 상태를 떠올리게 하고, 요(饒)는 넉넉함을 뜻한다. 풍요는 안팎으로 충분히 차오른 감각을 품고 있다. 결핍(缺乏)의 결(缺)은 이지러짐과 비어 있음을, 핍(乏)은 모자람을 뜻한다. 하나는 차오름을 바라보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비어 있는 자리에 오래 머무는 마음이다.

우리는 종종 풍요를 먼 미래의 상태로 미룬다. 더 많이 벌면, 더 좋은 집에 살면, 더 안정된 자리에 오르면 마음이 넉넉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삶의 조건은 중요하다. 그러나 풍요의 감각이 늘 미래로만 미루어지면 지금의 삶은 계속 부족한 상태로 남게 된다. 행복은 모든 조건이 완성된 뒤에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 안에서 이미 자라고 있는 충만함을 알아차릴 때 조금씩 가까워지기도 한다.

풍요로운 마음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따뜻한 식사, 누군가의 다정한 말, 오늘도 이어진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선택 같은 것들이 삶을 지탱한다. 그것들을 사소하다고 지나치지 않을 때 마음은 조금씩 넉넉해진다. 풍요는 큰 소유의 결과라기보다 작은 충만함을 느끼는 감각에서 먼저 자랄 수 있다.

결핍을 부정하거나 억누를 필요는 없다. 부족함을 느끼는 마음도 삶의 일부다. 때로는 실제로 부족한 것이 있고 채워야 할 것이 있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때도 있다. 다만 결핍이 마음 전체를 지배하게 두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부족한 것을 바라보되 이미 있는 것까지 잊지 않는 마음. 더 나아가고 싶어 하되 지금의 삶을 모두 부정하지 않는 마음. 그 균형 속에서 행복은 조금 더 깊어진다.

관계에서도 풍요와 결핍은 다르게 드러난다. 풍요로운 마음은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다. 함께 기뻐할 수 있고 나눌 수 있으며 서로의 성장을 삶의 좋은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결핍에 붙잡힌 마음은 쉽게 비교하고 비교는 다시 마음을 좁게 만든다. 풍요로운 관계는 서로의 삶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넓어질 수 있다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행복의 자기암시 역시 풍요의 방향을 따라야 한다. “나는 이미 가진 것의 가치를 느낀다.” “나의 삶에는 지금도 자라고 있는 충만함이 있다.” “나는 부족함보다 가능성과 감사의 방향을 바라본다.” 이런 말은 현실을 무조건 긍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결핍만 바라보던 마음을 조금 돌려 이미 삶 안에 있는 따뜻한 것들을 다시 느끼게 하는 자기암시다.

행복은 모든 것을 더 많이 가진 뒤에야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이미 있는 것을 느끼고, 지금의 삶 안에서 작은 충만함을 발견하며, 나와 타인의 삶이 함께 넓어질 수 있다고 믿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풍요는 마음을 넓히고, 결핍은 마음을 좁게 만든다. 어쩌면 삶의 풍요는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보다 지금 가진 것을 어떤 마음으로 느끼고 있는가에 의해 조금씩 깊어지는지도 모른다. © 꾸에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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