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과 근면: 반복 속에 담기는 삶의 태도


우리는 흔히 성실함과 근면함을 비슷한 말로 사용한다. 부지런히 일하고, 꾸준히 움직이고, 맡은 일을 오래 해내는 사람을 보며 성실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실과 근면은 서로 닮아 있으면서도 조금 다른 결을 가진다. 근면이 반복해서 애쓰는 힘이라면, 성실은 그 애씀 안에 어떤 마음과 태도가 담겨 있는지를 묻는 말에 가깝다.

근면(勤勉)은 부지런히 힘쓰는 태도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몸과 시간을 들여 반복을 이어 가는 힘이다. 삶에는 분명 근면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기 어렵고, 꾸준한 움직임 없이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쉽지 않다. 근면은 우리를 자리에 머물지 않게 하고, 매일의 시간을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게 한다.

성실(誠實)은 조금 더 안쪽의 태도다. 자신이 한 말을 지키고, 맡은 일 안에 진짜 마음을 담으며, 겉으로 보이는 움직임과 안쪽의 마음이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살아가는 힘이다. 성실한 사람은 단순히 바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신이 지키고 싶은 기준이 무엇인지, 지금의 반복이 어떤 삶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함께 바라본다.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때때로 바쁘게 살면서도 마음이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많은 일을 했지만 무엇이 남았는지 분명하지 않고, 계속 움직였지만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날도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움직임만은 아닐 수 있다. 지금의 부지런함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그 반복 안에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태도가 담겨 있는지를 조용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철학적으로 근면은 반복과 습관의 영역에 닿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토스는 반복되는 행위가 결국 한 사람의 성품을 만든다는 생각과 연결된다. 사람은 한 번의 큰 결심보다 매일의 작은 반복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반복이 모두 같은 깊이를 갖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반복하느냐만큼 어떤 마음으로 반복하느냐도 중요하다.

성실은 그 반복 안에 진실성을 더한다. 겉으로는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그 일을 대하는 마음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빨리 끝내기 위해 움직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맡은 일 안에 책임과 정성을 담으려 한다. 성실은 바로 그 차이를 만든다. 성실한 태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자신을 다듬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의 의미 안에도 두 단어의 차이는 담겨 있다. 성실(誠實)의 성(誠)은 말이 이루어진다는 뜻을 품고 있고, 실(實)은 속이 차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한 말과 실제 삶이 서로 멀어지지 않고, 그 안에 비어 있지 않은 내용이 담길 때 성실이라는 말은 깊어진다. 근면(勤勉)의 근(勤)과 면(勉)은 모두 힘써 애쓴다는 뜻을 품고 있다. 근면은 움직임을 이어 가는 힘이고, 성실은 그 움직임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를 묻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많이 하는 것을 잘하는 것과 혼동한다. 더 오래 일하고, 더 많이 움직이고, 더 자주 애쓰면 삶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반복은 중요하다. 그러나 반복이 방향을 잃으면 삶은 쉽게 지친다. 근면만 남고 성실이 사라지면, 사람은 자신의 속도에 밀려 자신이 왜 움직이는지 잊어버릴 수 있다. 삶은 단순히 많이 움직인 시간보다 그 시간 안에 어떤 태도를 담았는가에 의해 더 깊어지기도 한다.

성실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과도 닿아 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부지런함은 상황이 바뀌면 쉽게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조금 더 조용히 오래 간다. 그는 매일 대단한 일을 해내지 않더라도 작은 약속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그 작은 성실이 쌓이면 삶에 신뢰가 생기고, 그 신뢰는 다시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근면은 삶을 움직이게 한다. 성실은 그 움직임이 어디에 닿을지를 결정한다. 근면이 없다면 좋은 마음도 현실 속에서 자리를 얻기 어렵고, 성실이 없다면 많은 움직임도 깊이를 갖기 어렵다. 그래서 두 태도는 서로를 밀어내는 관계가 아니다. 근면은 성실의 몸이 되고 성실은 근면의 마음이 된다.

인생의 자기암시 역시 성실과 근면의 흐름을 닮아 있다. “나는 오늘의 작은 반복 안에 진실한 마음을 담는다.” “나는 바쁨보다 삶의 방향을 먼저 바라본다.” “나는 내가 한 말과 내가 살아가는 태도가 가까워지도록 나를 다듬어 간다.” 이런 말은 자신을 더 몰아붙이기 위한 말이 아니다. 하루의 반복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도록 삶의 방향을 정렬하는 자기암시다.

좋은 삶은 단지 부지런히 움직이는 데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움직임 안에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음이 담길 때, 반복은 조금씩 삶의 태도가 된다. 근면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주고, 성실은 그 길 위에서 자신을 잃지 않게 한다. 어쩌면 삶은 얼마나 많이 애썼는가보다 그 애씀 안에 얼마나 진실한 태도를 담아 왔는가에 의해 더 오래 기억되는지도 모른다. © 꾸에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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